해석학의 역사와 과제(1)

<< 이 글은 연세대학교 김광식 교수의 논문을 요약 발췌하여 게재하는 글임을 밝힙니다 >>

신학적 해석학의 역사를 말하려면 아마 헬라 철학과 구약의 여러 가지 해석학을 망라해서
논해야 할것이지만, 여기서는 고대교회와 중세교회와 종교개혁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논의된
해석학의 문제만을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하겠다.

고대 기독교의 3대 학파에 있어서 성서를 해석하는 방식은 각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는 특히 오리겐의 경우 성서의 세 가지 의미
즉 육적인 의미(즉 문자적-역사적의미 내지 문법적 의미)와 혼적인 의미(도덕적 의미)와
영적인 의미(즉 우의적 의미 내지 신비적 의미)가 인간학의 존재론적인 삼분법(영, 혼, 몸)과
상응된다고 하였으나, 실지로는영적인 의미와 육적인 의미라는 이중적 의미만이
주석의 관심거리 였다.

모든 성경 귀절이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모든 귀절이 합당한 문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반하여 안디옥 학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미에 입장에
서서 중기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오리겐의 학설을 반대하고 우의법을 배격하면서
역사적-문법적 주석을 내세웠다.
서방의 라틴 학파에서는 터툴리안이 성서해석은 방법론을 확립하였다.
그는 철학적 내지 신학적 관점에서 보다는 기술적인 면에서 본문의 역사적, 사상적 연관성을
찾고자 했다. 그는 특히 부분은 전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성서가 그 자체상 명확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신앙의 규칙을 해석의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내세웠다.
서방에서도 후기에는 필로와 오리겐의 해석학적 영향을 받았다. 고대의 여러가지 해석학의
조류를 종합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는 문자적으로 걸리는 본문을 뜻이 통하도록
우의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암브로시우스 감독을 통하여 배웠다.
그에게는 알렉산드리아의 영적 해석과 안디옥의 문자적 해석과 라틴 교회의 전통이 한데 뭉쳐
종합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한 세기가 지나도록 새로운 해석학이 제시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중세의 해석학을 안정시켰고 동시에 교회적 전통으로 굳어지게 하였다. 카톨릭 전통의
원칙을 성서의 해석학적 규범으로 삼게 된 것도 이러한 연관에서 이해 하여야 한다.
성서는 그 깊이 때문에 이해하기가 불분명하다. 그리하여 중세에서는 성서의 사중적 의미를
주장하게 되었다. 즉 성서는 문자적 의미와 도덕적 의미와 우의적의미와 신비적 의미를 가졋다는
것이다.
이미 아우구스티누스가 말의 뜻을 정확하게 주목하고 감관적인 데서 예지적인 데로
전이시키는해석을 하도록 만든 기호-사물의 도식 발전시킨 데 의거하여 토머스 아퀴나스도
성서를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것은 순전히 사람이 썼다는 것과는 달리 그 말뿐만 아니라 말이
표시하는 사물에 구원경세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영적 의미의 기초를 문자적 의미에서 찾고자 한 그는 영적 해석의 내용이 성서의 다른 곳에
문자적으로 들어 있다고 하여, 오리겐과는 달리 문자적 의미를 강하게 긍정하였다.
중세에 있었던 이단운동들이 주로 성서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으나, 해석학적으로 독자적인
공헌을 하지는 못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중세의 사중적 의미를 반대하고 전통의 원리에 대항해서 성서의
원리를 강조하였다. 즉 성서는 스스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성서는 전통을 주석의 규범으로 필요로 하지 않고 도리어 모든 전통은 성서에 비추어
검증되어야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비교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교회 위에 있다." 즉 성서의 문자적 의미에서성서의
바른 이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적인 성경 말씀 자체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므로, 율법과 복음을 바르게 구별하여
칭의론에 입각하면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하여 루터는 그리스도를 성서에 대립시킬 수 있었다.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누워 계신 말구유에 불과하다. 루터에게 있어서는 성서의 통일성을 찾을
시금석 즉 경전 중의 경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그의 칭의론 이었다.

<<계속>>

by 루미 | 2004/06/27 02:57 | knowledge of God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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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sraelite at 2004/06/27 03:04
좋은 글입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__)
Commented by 李銀周 at 2004/07/02 14:54
중세의 해석학의 문제와 19세기의 해석학의 문제는 사뭇 다른 데가 있는 것 같군요.
아마 딜타이나 불투만류의 해석학의 문제를 보다가 마르틴 루터의 이야길 들으면 해석학이란 말보단 주석학이란 말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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